이번에 읽은 책은 구병모 작가님의 <로렘 입숨의 책>이다
구병모 작가님은 『위저드 베이커리』, 『파과』, 『아가미』등으로 유명하고 나도 이거 읽어 보려고 샀었는데...
왠지 구매한 책은 언제든 읽을 수 있는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순위가 밀려 책장 속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다 ㅋㅋㅋ
아무튼 로렘 입숨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신간 소개만 보고 흥미로워서 읽게 되었다
목차는 '화장의 도시', '신인의 유배', '영 원의 꿈'부터 '지당하고도 그럴듯한', '시간의 벽감'까지 열두 개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주어에게 논리적으로 합당한 동사를 주었다고 하여 그걸 읽는 모든 이가 매번 행간을 이해하고 그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특히 요즘, 인터넷이 발달해 다른 사람의 글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말이 잘 맞는 것 같아서 저장했다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있는 힘을 다해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그 자신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작가가 제각기 싸지르거나 게워낸 모든 글은 로렘 입숨의 무한 변주 반복에 불과할지도 몰랐고, 글을 쓰면 쓸수록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 아무거나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졌으며,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는 비로소 그 무엇도 쓰지 않음?세상에 어떤 글도 존재하지 않음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던 궁극의 글쓰기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정적보다 완벽한 음악이 없듯이, 점 하나 찍지 않은 흰 도화지가 화려한 그림을 압도하듯이, 태어나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삶이듯이. 『동사를 가질 권리』 중에서
공감되는 말이자 취미로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아프기도 한 말이면서, 깊게 생각해 보게 했던 구절이다
그러나 나의 고작은 남의 고작과 같을까?
길지 않은 소설들 속에서 구병모 작가님은 독자를 사유하게 만들었다
말을 가진다는 것은 신이 된다는 뜻이다. 말을 남용하다 보면 자신이 언젠가는 그 말을 가졌다고 착각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신이 될 날이 언젠가는 올지도 모르고 실은 이미 저마다 신을 참칭하며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없애는 것은 인간 사회의 불의와 불편을 덜어내기도 할뿐더러 그들을 궁극적으로 신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원은 실패가 이어진 데 대해 조금도 낙담하지 않고 다음 도시로 나아간다. 세계는 넓고 도시는 많다. 어쩌면 신의 사전에 등재된 말들을 모두 지울 때까지 이 세계의 도시는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말들』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모욕을 주는 자들을 섣불리 용서하지 않기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진심 없는 화해에 서둘러 응하지도 않기를 빈다.
아, 정말로 다시 봐도 그렇지, 수긍하게 하면서도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편지라니 정말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로렘 입숨'은 뜻 없이 셰이프를 잡기 위해 흘려놓은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작품들 속에서 나는 강렬한 뜻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구병모 작가의 소설과 문장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빨리 파과와 아가미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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